뉴질랜드 4분기 실업률 4.3%로 반등…키위달러 급락(상보)
대개는 시골 장터에 가는 보따리장수 같은 행색이었다.
이건 푸대접 정도가 아니다.나는 용기가 없어 학생 시위에 앞장서지는 못했다.
진로를 고민하던 나에게 가까운 친구의 형이 경제학을 권했다.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차 상태가 좋지 않았다.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나는 그림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경부선에서 자주 봤던 번듯한 차림의 여행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승객들의 차림도 남루했다.
야당(신민당)에선 호남 푸대접론을 내세워 박정희 대통령과 여당(민주공화당)을 비판하던 시절이다.그 전에 경부선을 탔을 때는 전혀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그해 2월 서울 장충단공원 유세에도 갔다.나중에 자료를 보니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력에서 앞서 있었다.
상금은 그때 돈으로 30만원인가.나는 국가 발전에서 소외된 호남의 풍경을 마주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